전문가는 ‘기술 · 예술 · 기타 특정 직역에 정통한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한다. "전문가는 자신이 아는 게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하고 사기꾼들은 반대로 모든 것을 알거나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몇 년 전 김진명의 소설 ‘천년의 금서’를 읽다가 전문직의 자존심에 대해 서술한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확한 구절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문가라면 논리적으로 인정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게 전문가의 본질이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시대에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은 참으로 많다. 어떻게 보면 존재하는 사람 모두가 하나하나의 전문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럼에도 건축사는 명실상부한 전문인이다.
건축사로 살아가기 시작한지 만 15년이 지났다. 건축사사무소 개소 초기에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만나는 건축주 및 관련인들과의 만남 및 수행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수행하는 것이 그저 보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정말 베테랑이 되어 모든 것을 수월하고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까닭인 듯하다. 지금, 그때 예상했던 10년이 훌쩍 지났고 어느새 푸른 꿈의 새내기 건축사는 중견 건축사가 되어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여전히 버벅거리는 건축사이다. 그 사이 환경과 조건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새로운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5년이라는 시간이 내 나이에서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헉소리가 나는 시간이다.
15년을 건축사로 지낸 시간 동안 나는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하였는가? 나는 내면적으로는 별 변화가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5년이란 시간이 정말 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나 달력이 지나가 있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기에 인정할수 밖에 없다. 15년은 13만 1,400시간이다. 이렇게 계산해보니 정말 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103세의 철학자 김형석교수는, 인생을 3가지 시기로 구분하였다. -배우는 시기, 직장생활(경제활동)을 하는 시기, 정년퇴직 후의 시기- 100세의 노교수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는 시기는 퇴직을 한 후의 시기이며 자신은 80쯤 되었을 때 철이 들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김형석교수의 말이 맞다면(공자는 40이면 불혹, 50이면 지천명이라고 했지만) 다행히 나는 아직도 시간이 충분하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나는 예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작은 사무소나마 책임져야 하는 직원들이 있고, 각종 모임이나 단체에서는 어느새 임원을 역임할 나이가 되었고, 각종 사회활동도 하고 있다. 업무에 능숙해짐을 스스로 느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업을 완벽하게 하기는 쉽지 않다.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제각각의 조건이 있고,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입장마다 다른 의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축사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총괄적 입장에서 수행하는 일을 한다. 건축은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공간인 동시에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조정하고 수용하는 공적공간이며, 나아가 장차 미래세대에게 계승되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공공성을 지닌다.’라고 「건축기본법」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전문인인 건축사 한명 한명이 어떤 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업무를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의 문화유산으로서의 건축은 가치를 발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더불어 각 직역에서의 전문가들이 전문가적 책무를 다하며 생활할 경우, 우리 사회는 무궁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의 중산층의 기준은 1) 페어플레이를 할 것.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이고, 한국에서의 중산층의 기준(2017년)은 1)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원 이상. 3) 자동차 2000cc이상. 4) 예금잔고 1억원 이상. 5) 1년에 해외여행 1회 이상이라고 설문조사 되었다고 한다. 영국은 정의롭고 한국은 경제적 관점만 보는 것이 사실일 수만은 없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을 언급할 때 사회적 책무와 행동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경제적 기준으로만 중산층을 구분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 건축사들은 결코 경제논리로만 건축사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건축사는 5년제의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3년의 수련과정을 거쳐야만 시험을 볼 자격이 있다. 건축학과 학생들은 다른 어느 과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학습량을 소화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 작은 예로 건축학과 학생들이 졸업할 때는 적어도 열 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아는 상태인 것만 봐도 그 학습강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건축사사무소에서는 그에 보답되는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건축사들이 업무량에 비해 그만한 대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개업이후 상당히 열심히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고 자부한다. 시간적으로나 열정으로나 이 보다 더 열심히 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쏟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노력에 비해 성과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중년의 나이가 됨에 따라 건강관리도 해야 한다라고 몸에서는 신호를 보낸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마치 현답인 것처럼 생각하며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건축사 일이 보람도 있고 재미가 있기도 하긴 하다. 그렇지만 마냥 여태까지처럼 열심히, 날을 새 가면서까지 일하기는 조금 지치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직업군보다도 많은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건축사가 전문직으로서의 대우를 명실상부하게 받으며, 미래세대에 계승되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건축물을 한 땀 한 땀 공들여 설계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시급히 오기를 희망한다. 건축설계는 엉덩이 힘으로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설계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품질은 차이가 난다.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온전히 힘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건축문화는 한층 발전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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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라피
레츠터, 뇌과학과 기술분야의 전문리포터
2) 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한 중산층 기준
3) 한국 직장인 설문조사, 조선일보. 2017.08.30.

신영은 건축사는 풍경과 어우러지는 건축을 꿈꾼다.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면 도시는 새로운 가로풍경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기존의 풍광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조금 더 정돈되고 발전되기를 소망하며 건축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2008년 건축사사무소 ‘사람’을 개소하여 월산5동주민센터(2012), 첨단배드민턴장, 남구청 민원실동, 서구 사회적가치혁신지원센터 등을 작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