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여 전 오랫동안 머물렀던 건축사협회 건물을 떠나 대남대로변으로 사무실 이전을 하였다. 막연히, 이제 독립된 공간에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과 작은 사옥을 짓고 싶다는 소망에 결행하게 된 것 같다. 남구에 집이 있었지만 바쁜 사무소 업무에 집보다는 사무소에서의 생활이 압도적으로 많아 이사 온 곳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백운동에 터를 잡은 후 매일매일 식사시간이 즐거워졌다. 무등시장까지 가는 골목의 복잡함과 다양한 풍경을 보는 것이 생기가 있었고 다양한 메뉴의 식당과 각양각색의 저렴한 상품이 있는 시장을 걷는 것이 흥미로웠다. 1년 반쯤은 무등시장과 골목길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식당과 카페를 이곳저곳 다양하게 탐색하고 이 골목 저 골목을 일부러 돌아다녔고 웬만한 곳은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걷고자 했다.
저층 주택단지의 골목을 휘돌아 걸으면 세계은행 차관 택지조성사업의 결과답게 골목들이 직선으로 뚫려 있어 골목의 끝엔 하늘과 자연이 보였다. 골목을 여러 날 걷다 보니 어느 날 문득 파리의 풍경과 이 곳의 풍경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선만 지우면 아름다운 도시 파리의 골목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무등시장은 1978년 세계은행 차관 택지조성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세은주택단지에 주거밀집지역이 형성되면서 문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의 수용을 위해 농지였던 곳에 주택단지를 조성하고 극락천(군분천)을 복개하여 무등시장을 만든 것이다. 아래의 구지도를 보면 무등시장주변 주택단지 일대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다. 담양의 주택설계를 의뢰받아 설계를 하던 중 그 땅의 흔적을 알고 싶어 국토정보플랫폼을 검색하다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변천과정도 궁금하여 시대별로 지도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도시의 변천과정과 변화의 상황을 알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다. 구지도를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내가 순간의 시간을 빌려 쓰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있는 동안 아득바득 많은 땅을 점유하고자 애를 쓰지만 우리는 유구한 시간의 찰나일 수도 있으리라.
골목을 걸으면서 구지도를 보면서 땅을 보는 인식이 달라짐을 느낀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과거에는 어떤 곳이었는지? 우리가 빌려 쓰는 이 땅을 어떻게 보존 또는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를 잠시 생각해본다. 산업이 발달하고 사회의 변화가 급격한 이 시기에 우리는 끝없는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가까운 백운동 로터리 주변의 변화 또한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오랫동안 비슷한 형상이었던 백운동 로터리가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고가도로 철거의 영향도 크겠지만 고층의 아파트 숲이 들어서면서 훨씬 더 큰 시각적 심리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무등시장 주변의 저층주택단지는 조성시점에는 광주의 끝자락이었으나 지금은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위 지도를 보며 알 수 있다. 조성된지 40여년이 흐른 군분로(극락천의 다른 이름인 군분천을 복개한 도로여서 붙여졌다고 한다.)일대의 저층주택단지는 한 세대 반이 지나는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규모적으로 큰 변화가 많지 않기에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늘도 이 골목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걷고 걷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소소한 변화들이 보인다. 담장 밖으로 팔을 뻗은 석류가 익어가고 집들이 조금씩 리모델링하는 모습이 보인다. 광주역 근처의 상업지역에서 15년을 살았지만 그곳에서 걷기를 즐긴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렇지만 이곳에 온지 3년이 된 지금 내가 이 마을의 터줏대감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반복해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며 내일도 다시 뵙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