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 그른 데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소싯적(?)에는 그 말이 고리타분하고 어른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살짝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나이를 먹어가고 세상을 살아볼수록 그 말이 깊이 있게 다가온다.
십수 년 전 내게 와 닿았던 옛말은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라는 문구였다. 논문을 쓰기 위해 여러 자료들을 검색하고 연구하는 중에 발견했던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자연의 위대함으로 받아들였었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한다.. 또한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자연은 수십억 년의 시간을 거쳐 오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있다. 생태학적으로 표토 1cm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약 5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연(自然)은 단어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것’ 즉,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자연의 지형과 자연의 줄기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 스스로 변화하게 놓아두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새삼 되새기는 말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이다. 10년쯤 지나면 미동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강과 산도 변한다는 말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은 늙고 싶지 않으나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고, 시간의 흐름에 의해 세대가 변함에 따라 자연스레 사람들의 의식도 바뀌어 간다. 한 때 ‘진리’였던 것도 시간에 의해 ‘진리가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장(醬)이 오랠수록 맛이 좋아지고 풍부해지듯이, 사람도 오랠수록 많은 걸 경험하고 느낀다. 아프리카의 작가 함파테 바는 1960년 유네스코 연설에서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서재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했다.
사람 개인의 의식은 쉬 바뀌지 않는다. ‘될 사람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이 있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 번 형성된 사람의 가치관, 취향은 시간이 지난다고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세대가 교차됨에 따른 변화이지 개개인의 사람의 사고가 바뀌는 것 같지는 않다. 한 예로 내가 어렸을 적의 엄마들은 거의 뽀글이 파마를 하고 월남치마를 입었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엄마들은 어렸을 때부터 입었던 청바지를 지금도 착용하고 헤어스타일은 단발을 하고 있으며, 그 때의 엄마들이었던 할머니들은 여전히 뽀글이 파마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 때의 신세대들은 이제 누가봐도 중년인 것이다.
그렇게 개개의 요소들의 물성은 거의 변화가 없지만 새롭게 형성된 요소들에 의해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나이 먹는 건 붙잡고 싶지만, 아이들이 어서 자라기를 바란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나이 먹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저절로 변화하는 시대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나의 변하기 어려운 근본적 성향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옛말 그른 것 없음을 인식하면서..